예전에 구청의 복지회관에서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다.(회사에서 반강제적으로 간 거니 “자원봉사”라는 표현은 좀 민망하다) 어쨌든 그 당시 맡은 일은 사회복지사분들이 담당하고 있는 영세민들에게 줄 도시락을 가져다주는 작업을 돕는 일이었다. 말이 돕는 것이지 거의 따라다니며 구경하는 수준이었다. 열심히 쫓아다니며 도시락을 건네며 흘깃 훔쳐본 그분들의 살림살이는 말할 것도 없이 안쓰러울 정도로 초라했다. 돈이 없어 수리도 못하고 있는 부서진 처마하며 빛도 안 들어오는 방이 보금자리라기보다는 ‘몸을 뉘일 곳’이라는 편이 나을 듯싶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어느 아파트단지에도 들어갔다. 이런 데도 영세민이 살고 있나 의아할 정도로 깔끔한 아파트단지였는데 알고 보니 임대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언제부터인가 아파트 단지를 건설할 적에 임대아파트가 몇 단지 함께 건설되었다. 정책입안자는 여러 계층의 주거지 혼합을 통해 일종의 계층 간 인적교류도 의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어쨌든 방문한 임대아파트를 보니 여느 아파트와는 달랐다. 외양은 비슷하였으나 임대아파트는 마루에 방 하나, 화장실 하나 달린 좁은 평형 수였다. 그러니 살림이 단독주택지의 허름한 방들보다는 나았지만 여전히 궁색함을 면할 수 없었다. 잠깐 나눴던 그분들과의 대화에서 그분들도 그분들 나름의 애로가 있음을 알았다. 어찌어찌 임대아파트를 들어오긴 했지만 한 달에 십 몇 만원 하는 임대료도 그들에게는 너무 벅찬 금액이었던 것이다. 남들 보기에는 그럴듯한 아파트에 산다고 생각될지 몰라도 실상은 어두운 쪽방 살림보다 크게 나을 것이 없었던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과연 이 분들이 다른 단지의 아파트 주민들과는 잘 어울릴 수 있을까.. 또 다른 소외감은 느끼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하지만 어느새 “타원봉사(!)” 시간이 끝났고 즐거운 마음으로 퇴근해서는 새까맣게 그들을 잊어버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오늘 MBC 뉴스를 보았다. 임대아파트 단지를 다른 단지 주민들이 어떻게 차별하는지를 고발하는 뉴스꼭지였다. 아파트 단지 내 무료로 빌려주는 자전거가 있는데 임대아파트 주민들은 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약간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그것은 약과였다. 어떤 아파트는 임대아파트 단지 길목을 다른 단지 주민들이 쇠사슬로 막아버려 차가 진입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어떤 단지는 담을 치고 철조망을 쳤다. 이쯤 되면 주거지가 아니라 감옥이다. 임대아파트 주민들의 치욕감을 생각해보기나 한 걸까?

임대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소문이 있으면 기를 쓰고 막는단다. 주거환경, 특히 교육환경 나빠져서란다. 뉴스에서 어떤 부동산업자는 임대아파트가 들어서면 아파트 시세가 5천만 원에서 1억 원이 왔다 갔다 한다고 알려준다. 소시민의 욕망과 이기심이 가장 천박한 형태로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사람의 재산이 있고 없음을 가지고 사람을 차별하고 격리시키고 매도하는 추악한 모습이었다. 아파트 시세를 위해 베란다에 담요 널지 말자는 이야기에 혀를 찼는데 그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무엇이 이 사회를 이렇게 몰염치하게 만들었을까? 알량한 물질적 소유 탓일까? 그 알량한 아파트 한 채 때문에 자신들은 임대아파트에 빌붙어 사는 천한 것들과는 다른 고귀한 존재, 선택받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허위의식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사회가 대통령이 하나 바뀐다고 정권이 뒤바뀐다고 또는 경제체제가 확 뒤바뀐다고 쉽게 정의로워지고 서로 존중하는 사회로 바뀔는지 의구심이 든다.

한편으로 대단위 아파트 단지라는 우리나라만의 특색 있는 주거형태가 이 사회를 보수화시키는 한 원인이 아닌가 하는 생뚱맞은 생각을 해본다. 즉 아파트는 균일한 주거형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아파트의 매매가가 그대로 호가의 하한선이 되는 그런 양태를 띠게 된다. 그러다보니 이 사회에서 또 하나의 특색 있는 집단인 부녀회 등 아파트 입주자들의 모임에서 집값관리에 대해 중지를 모으게 되고 다른 주민들을 선도하면서 자신들의 재산권의 보호 내지는 극대화를 추구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스스로를 자산가로 규정하며 정치성향도 쁘띠 자산가의 형태로 보수화되는 그런 순환구조를 가지게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마침내는 자신들의 재산권에 악영향을 미치는 임대아파트를 철조망으로 격리시켜버리는 파렴치한 짓까지 서슴지 않게 된다.

어쨌든 가슴 아픈 소식이었다. 한편으로 스스로도 반성을 해본다. 나 스스로도 나는 그렇지 않다고 자신할 수 없다. 내가 아파트에 살지 않는다고 면죄부가 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나도 언젠가 은근히 무심코 가난한 이들을 ‘가난하다는’ 이유로 꺼리고 비하하였을 것이다. 이 밤에 철조망으로 임대아파트 주민들의 가슴에 상체기를 낸 그 고귀한 주민들을 혐오하는 동시에 나 스스로의 무관심도 반성해본다.

참고기사
http://h21.hani.co.kr/section-021003000 ··· 084.html

2007/10/20 00:22 2007/10/20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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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상적인 야만 - 한국판 게토(ghetto)

    Tracked from 민노씨.네 2007/10/21 09:33 Del/Mod

    '정두언 망언'에 관한 후속글을 쓰다가(이건 오늘 저녁이나 내일쯤 쓸 것 같다) 머리도 식힐 겸 여기저기 내가 좋아하는 블로그들을 기웃거렸다. 그러다가, 비교적 최근에야 알게 된, foog님 블..

  1. # 민노씨 2007/10/21 08:56 Del/Mod Reply

    "소시민의 욕망과 이기심이 가장 천박한 형태로 드러나는.."
    공감합니다.
    좀 많이 화나네요.

    그런데 말미에 써주신 것처럼 그 천박한 욕망이 우리들 내부에 이미 스며들어 있는 건 아닌지 섬뜩하기조차 합니다. 정말 이런 천박하고, 야만적인 인식, 차이와 차별을 혼동하는 인식들은 제발 좀 사라지길 바랍니다.

    이런 야만적인 풍경이 일상화된 나라가 국민소득 4만 달러, 5만 달러가 되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1. Re: # foog 2007/10/21 11:50 Del/Mod

      이런 부분들 때문에 많은 이상론자들이 인간성 개조를 참세상의 전제조건으로 봤었죠. 과연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

  2. # mindfree 2007/10/22 16:27 Del/Mod Reply

    얼마 전에 직장 동료와 술을 마시면서 '난 집 문제만 해결되면 한 달에 백만원 벌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 같애' 그랬더니 그 친구가 고개를 끄덕이며 '정말 그렇게 보여' 하더군요. 그러면서 '임대아파트를 알아보라'고도 했는데.. 그냥 나 혼자 살 거라면 까짓 철조망 쯤이야 무시하고 다니지만, 만약 결혼해서 처자식(자식에 방점)이 생기면.. 내 아이가 저런 철조망 옆을 지날거라 생각한다면. 못 갈 것 같군요....

    1. Re: # foog 2007/10/22 16:37 Del/Mod

      사람의 욕망은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또 자가발전하는 것일 수도 있고.. 저 자신도 인간이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방금 어느 친구와 욕망은 이륜자전거와 같아서 계속 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지고 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이야기나눴거든요.

      어쨌거나 인간이라면 어떤 식으로든지 욕심 내지는 욕망이 있겠지만 그것이 이유없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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