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이현우는 요즘에는 ‘헤어진 다음날’이라는 히트곡을 가진 한물간 발라드 가수, 혹은 어색한 연기가 나름 귀여운 가수 출신 연기자쯤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한에는 그는 국내 댄스 음악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다진 - 최소한 다지려 시도했던 - 아티스트라 할 수 있다.
재미교포 출신인 그의 국내 데뷔곡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신나는 댄스싱글 ‘꿈’이다. 이 곡을 발표한 때가 90년쯤으로 기억하는데 이 곡은 당시 서구의 댄스싱글의 조류를 적절히 도입한 곡이었다. 바비 브라운이 크게 히트시킨 뉴잭스윙 풍의 곡 흐름에 C&C Music Factory를 연상시키는 추임새까지 당시 댄스싱글이 아직 음악성 있는 장르로 인정받지 못하던 시절 국내 댄스음악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곡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곡은 또한 마케팅에서도 기존의 음반산업의 틀을 벗어난 새로운 시도였는데 - 적어도 내가 아는 한에는 - 국내에서 최초로 시도된 싱글EP 개념이었다. 즉 히트곡 하나 나오면 한 음반에 10여 곡씩 - 그것도 거의 수준미달의 급조된 곡들로 - 챙겨 넣는 것이 아니라 ‘꿈’의 오리지널 곡과 그 곡의 리믹스 버전을 넣은 그런 음반이었다. 이 리믹스라는 개념도 그 당시로서는 생소한 개념이었을 것이다.1
오늘 이현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놓는 이유는 그의 두 번째 앨범의 한 싱글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우리나라 연예 관련 DB가 대충 후진 관계로 언제 이 앨범이 발표되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여하튼 이 앨범에는 아주 귀에 쏙 들어오는 곡이 한 곡 들어 있다. 제목은 ‘이 거리엔 비가’ 다. 이현우의 이 곡을 방송에서 처음 듣는 순간 나는 순간 영국의 Synth-pop 그룹 Depeche Mode 의 곡이 아닌가하고 생각했었던 기억이 난다.
Depeche Mode(그들의 뮤직비디오 감상하기)는 영국 출신의 4인조 Synth-pop 밴드로 초기의 말랑말랑한 멜로디의 슈가팝에서 후반으로 갈수록 진중하고 깔끔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이제는 거의 U2급의 거물 밴드로 인정받는 이들이다. 여하튼 당시 이들의 음악은 국내 팝팬에게조차 생소한 처지여서 이현우의 새 싱글이 이들의 사운드를 흉내 낸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실험이라 할 수 있었다. 사실 이현우는 어느 인터뷰에서도 Depeche Mode의 팬임을 밝힌지라 그의 곡이 DM의 곡과 비슷하다 하여 크게 나무랄 것도 없고 (오히려 요즘 논란이 되었던 서태지의 표절 시비와 같은 비난을 받을 이유도 없이) ‘이 거리엔 비가’는 그 나름대로 훌륭한 멜로디와 곡진행으로 독창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실험을 실험 일뿐. 초기 뉴잭스윙 스타일의 ‘꿈’에 열광하던 이들이 신디사이저 사운드가 보강되고 왠지 춤추기 어려운 리듬의 댄스곡이라는 희한한 장벽에 부딪혀 ‘이 거리엔 비가’를 외면하였고, 결과적으로 전작의 성공의 발꿈치에도 못 미치는 금방 잊혀져버린 싱글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이현우는 이후 한동안 슬럼프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몇 년 후 현실과 타협한 - 그러나 멋진 곡인 - ‘헤어진 다음날’로 재기에 성공한다. 그리고는 어느새 어눌한 연기까지 선보인다.
결국 그의 장르적 실험은 실패하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가수이자 연기자인 종합연예인2으로 거듭난 것은 매우 축하할 만하다. 만약 그의 실험이 성공하였다면 우리나라의 음악계도 지금과 같이 아이돌 국화빵들이 가요시장을 지배하는 그런 획일적인 풍토보다는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하였을지는... 며느리도 모르지.
‘이 거리엔 비가’의 오리지널을 찾을 수가 없어 리믹스 버전을 소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