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한일청구권조약에 대한 양국의 입장 차이 하나

어제 치러진 일본의 참의원 선거는 아베 정권의 “절반의 승리“로 끝났다. 적어도 그의 임기 동안 그가 그렇게나 바라마지 않던 평화헌법의 개정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남한이라는 새로운 주적(主敵)을 설정하는 무리수를 통해 소비세 인상 등의 악재를 뚫고 개헌이 가능한 의석을 확보하려던 아베의 꿈은 다행히 저지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 정권의 남한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는 쉽사리 풀리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처음 남한을 화이트 국가에서 제외하겠다는 의중을 내비칠 때 아베는 “지금까지의 우호관계에 반하는 한국측의 부정적인 움직임“이 수출 규제 조치의 원인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그런 애매모호한 변명이 궁색하다는 것을 눈치채자마자 “에칭가스는 독가스나 화학무기 생산에 사용될 수 있는데, 행선지는 북한이다“라는 안보상의 이유라는 궤변을 들이대기 시작한다. 거기에 “사린가스“라는 일본인의 트라우마까지 써먹었다.

하지만 블룸버그의 보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누가 보기에도 아베의 야비한 수출 규제 조치의 원인은 “식민지 기간에 일본 기업이 저지른 강제노역에 대해 그들이 배상해야 한다는 한국 법원의 판결에 대한 앙갚음”이다. 아베 스스로도 선거 개표 방송 인터뷰에서 “한국이 청구권 협정 위반 상황에 대한 제대로 된 답변을 가져오지 않으면 건설적인 논의가 안될 것”이라고 확인했다. 정치적 이유로 경제적 압박을 하고 있음을 실토한 것이다.

이번 아베의 도발은 근본적으로 박정희 정권이 1965년 당시의 일본 정부와 체결한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에 대한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거칠게 보아 현재의 문재인 정부 포함 민주적 선출을 통해 집권한 정부는 당시의 조약을 일제의 불법적 지배로 인한 손해배상이 배제된 독재정부의 일방적 조약이라고 보는 반면, 아베 정권은 정권의 연속선 상에서 모든 보상 및 배상이 정리됐다고 보는 입장이라 할 수 있다.


속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조선일보

1991년 일본 참의원예산위원회에서의 야나이 당시 외무성 조약국장의 입장 표명, 2005년 참여정부 시절 민관공동위원회의 의견, 2012년 김능환 전 대법관이 주도한 대법원 판결 등을 통해 확인한 바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의견은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베는 이를 부정하고 있다.

양국 정부의 의도를 해석해보자. 우선 일본 정부는 굳이 선한 의도로(!) 해석하자면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라는 입장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너희가 보기에 불충분한 조약이었다 할지라도 수긍해야 한다’가 아베의 의도다. 한편 독재정권의 정통성에 의문을 가지고 있는 현 정부의 의도는 이를 “불쾌한 채무(Odious Debt)“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그 조약을 정통성 없는 독재 정권이 졸속으로 맺은 밀약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제3세계에서 한 정부의 정통성이 이전 정부의 그것과 다를 경우 “독재정부가 부패한 방법으로 빌린 ‘불쾌한 채무(Odious Debt)’를 갚지 않겠다고 디폴트 선언을 하기도 한다. 법리적으로 보나 애초 일본 정부의 의도로 보나 1965년 조약은 그러한 채권채무 관계보다 더 조악한 밀실 조약임이 분명하기에, 어쨌거나 진보적인 정부나 일제의 불법행위의 피해자가 보기에는 – 피해자 중심주의적 관점에서 – 부정한 채권 청구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아베 극우 정권에게 1965년 조약에 대한 남한 행정부의 입장과 사법부의 강제징용자에 대한 판결은 수용 불가능한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하기에 어떤 식으로든지 압박은 계속될 것이다. 다만 글로벌 제조업 체인을 뒤흔드는 현재와 같은 경제 보복 조치는 너무나 무모하고 근시안적이기에 조만간 최소한 미세 조정이 있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렇지만 남한에 친(親)아베 정권이 들어서지 않는 한 정치적 긴장은 상당기간 온존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에 대한 해법은 무엇이 있을까? 개인적으로 우쓰노미야 겐지 전 일본변호사협회 회장이 제시한 해법을 소개한다. 그는 한일청구권협정의 조항의 내용과 범위에 관한 “양국 정부의 일관성 없는 해석과 대응”을 지적하며 “협정 체결 과정에 관한 문서의 공개와 인식 공유“를 통해 해결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과정은 이 밀실 조약이 한일 양국의 미래를 발목 잡는 현 상황을 타개할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박정희가 박아놓은 쐐기가 너무 어설프기에.

‘한 나라가 기초부품 등을 수출하면 ‘다른 나라가 중간재를 조립하거나 최종 제품을 생산하는 상호보완적인 관계’ 이기 때문에 ‘국제적인 연쇄 생산 과정 중 장애가 발생할 경우 양국 사이 문제에 그치지 않고 경제 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일본 경제산업성 2019년 통상백서]

“잠시 동안 계급투쟁을 잊어버리자” 나라 경제가 이런데….

“왜 빵의 부족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가?” 다른 병사가 소리쳤다.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쮸드노프스키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 다음에는 멘셰비키적 방위주전론자로서 비테브스키 소비에트의 대표인 한 장교가 말했다. “누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느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정부가 아니라, 전쟁이다. 그리고 어떤 변혁보다도 우선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 여기에서 야유와 빈정거리는 박수가 있었다. “볼셰비키 선동가들은 데마고그다!” 회의장은 웃음소리로 진동했다. “잠시 동안 계급투쟁을 잊어버리자”고 그는 말했으나 그의 말은 더 이상 계속 될 수 없었다.[세계를 뒤흔든 10일, 존 리드 저, 장영덕 역, 두레, 1993년, p63]

오랜만에 책꽂이에서 꺼내 읽은 책의 일부분을 인용해보았다. 미국 언론인 존 리드가 볼셰비키 혁명을 직접 체험하고 책으로 엮은 르포 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니 만큼 현장에서의 생동감이 1세기가 지난 지금에 읽어도 어렴풋이 느껴질 정도다. 인용한 장면은 10월의 어느 날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의 한 철야회의에서의 모습이다. 계급모순과 민족모순 중에서 우선순위가 무엇인가라는 사회변혁의 오래된 이슈가 이 장면에서 또 한 번 연출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심사는 치열했습니다. 9시간을 넘겼습니다. “분식회계도 횡령도 아래에서 정상적으로 처리한 줄 알았다”는 게 김태한 대표의 입장, “분식회계도 증거인멸도 횡령도 김 대표의 지시를 받았다”는 게 김동중 삼바 전무의 입장이었습니다. 서로의 책임을 물었습니다. 이런 날선 내부 다툼과 법적 공방 끝에 삼성 측은 호소에 나섰다고 합니다. 어쩌면 ‘일격’에 가까운 호소,

“일본 문제도 있고, 나라 경제가 이런데….”

영장심사 결과는 김 대표도 김 전무도 모두 기각. 집으로 돌아갔습니다.[‘삼바’ 영장심사에서 나온 말, “나라 경제가…”]

존 리드의 책을 읽고 나서 뜬금없이 낮에 읽은 이 기사가 떠올랐다. 정확히 삼성 측의 누가 저 말을 했는지는 보도에 나와 있지 않지만, 여하튼 참으로 어이없는 적반하장 발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삼성이 현재 일본의 무모한 정치적 도발의 책임을 져야 하는 당사자는 아니고, 일면 그 도발로 인한 피해자라고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구속영장심사 자리에서 피의자가 할 소리는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할 말로 일본 문제와 이들 기업의 분식회계가 무슨 상관이나 있기는 한가?

어쨌든 존 리드의 책을 읽다가 삼바 기사가 떠오른 것은 내부의 갈등을 외부의 적을 팔아 회피하려는 작태가 유사 이래 정치집단 내, 계급적 갈등관계에 있던 집단 사이, 심지어는 범죄 집단과 이를 단죄하려는 시민사회 사이에서도 단골 메뉴로 꺼내들었던 핑계거리가 되곤 했다는 점에서 약간의 연상 작용이 있었던 것 같다. 앞서의 장교는 어쨌든 선의에 의한 발언이라고 여겨지는 반면, 삼성 측의 주장은 본인들의 범죄를 나라가 처한 어려움을 틈타 빠져나가려는 야비함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나라 경제를 망쳐놓은 것은 본인들인데.

블로그에는 글도 안 쓰는 제가 청와대 게시판에 글 하나 올렸습니다

청룡봉사상을 없애야 합니다[해당 페이지 가기]

29일 경찰 등에 따르면 경북 포항경찰서 소속 A 경감은 지난 26일 ‘청룡봉사상이 우리의 자존심을 구깁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경찰 내부 통신망(폴넷)에 올렸다.
….
경찰 내부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임에도 불구하고 민갑룡 청장은 지난 20일 “오래된 상”이라는 이유로 조선일보가 심사해 1계급 특진하는 방식에 대해 유지 입장을 밝혔다. <"자존심 구기는 청룡봉사상 없애야" 경찰간부 공개반발>

2019년 5월 29일 자 노컷뉴스 보도의 일부입니다. 이 사회는 지금 검찰과 경찰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정부 기관의 수사권 조정, 버닝썬 사태에 대한 진상조사, 김학의/장자연 사건 등 과거사에 대한 검경의 수사 등 검경을 둘러싼 여러 갈등과 사건에 대한 이슈로 온 국민이 그들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우려를 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버닝썬 수사는 “명운을 걸겠다”는 경찰청장의 비장한 각오가 무색하게 용두사미가 되는 느낌이고, 고 장자연 씨의 억울함을 풀 수 있었던 재수사 역시 다시 답답했던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지만, 많은 이들은 그 뒤에 무언가 정당하지 못한 수사기관과 이해당사자 간의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중 하나가 이 글을 쓰는 이유인 청룡봉사상의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최근 많은 이들이 하고 있습니다. ‘오얏나무 아래에선 갓끈도 고쳐 쓰지 말라’는 속담도 있는 판에 경찰이 그동안 조선일보라는 특정한 매스미디어와 공동으로 특진의 기회까지 주는 상을 일선 경찰들에게 수여해왔다는 사실은 속담에서의 우려가 현실이 되는 상황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그게 또 기사 속에서 보도된 많은 일선 경찰의 생각이기도 하고요.

단순히 “오래된” 상이라는 이유로 폐지가 어렵다는 경찰청장의 발언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오래된 적폐를 없애고 깨끗한 사회로 나아가자는 것이 시대적 요청입니다. 반공 제일주의도 오래된 적폐였고, 공직자의 접대 관행도 오래된 적폐였고, 관권선거도 오래된 적폐였습니다. 경찰과 특정 매스미디어와의 유착이 오래됐다는 이유로 존속되어야 한다는 경찰청장의 발언 역시 앞서 사례와 같이 오래된 또 하나의 적폐라 생각합니다.

청룡봉사상 폐지해주십시오.

인용

그 결과 우리가 지니는 사법은 후기 그리스, 로마 경제의 막연한 기초 위에 서 있는 것이 되어 있다. 서양의 경제 생활이 문명화되었을 때 자본주의의 이름과 사회주의의 이름을 서로 대립시키는 깊은 적의가 유래하는 것은, 대부분 학자적 법 사상이, 그리고 그 영향을 받은 유식자 계급의 사상 일반이 사람, 사물 및 소유와 같은 아주 중요한 개념을 그리스, 로마 생활의 상태 및 배치와 결부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서구의 몰락 2, 오스발트 슈펭글러 지음, 박광순 옮김, 범우사, 1995년, p331]

중앙은행권

주권 권력이란 (대부분) 국가에 독점되어 있다. 국가는 따라서 스스로가 발행한 채무 증서들, 예를 들어 통화 및 지급준비금을 그 사법권이 미치는 영역 내에서는 거의 전면적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들 수가 있게 된다. 하지만 은행 및 여타 금융 기관들은 보통 자기들의 채무를 국가의 채무로 전환해주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우리는 은행의 당좌예금을 ‘요구불 예금 demand deposits’이라고 부른다. ‘요구하는’ 즉시 은행들이 자신들의 채무를 국가의 채무로 (즉 중앙은행권 – 옮긴이) 바꾸어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균형재정론은 틀렸다, L. 랜덜 레이 지음, 홍기빈 옮김, 책담, 2017, p53]

읽는 이에 따라 조금은 헷갈릴 수도 있는 서술일 수도 있다. 이 짧은 글에서 담고 있는 요지는 이렇다. 중앙은행권은 – 또는 중앙은행권이 발행되기 이전에 각 은행에서 발행했던 은행권 – 그 발행 주체인 국가의 채무 증서라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은행의 역할은 자신들의 채무를 – 예금 – 채권자(예금자)의 요구가 있을 시 국가의 채무(은행권)로 전환해주는 것이라는 서술이다. 요컨대 우리 국민들은 은행권(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한 국가에게 있어 채권자다. 은행권은 국채와 마찬가지로 국가가 발행한 채무 증서이고 우리는 그 채무 증서를 들고 있는 채권자다. 은행권과 국채 간의 차이라면 전자는 이자를 받지 못하고 후자는 받는다는 점이다. 예금으로 보유할 때는 은행의 채무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이자를 줬지만, 우리가 은행권으로 전환하는 순간 국가는 우리에게 이자를 지불하지 않는다. 조금은 억울하지 않은가?

빌 더블라지오 : 아마존이 거부한 길(Bill de Blasio : The Path Amazon Rejected)

아마존이 뉴욕시에 제2본사를 짓겠다는 계획을 철회하자 국내외 언론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를 비롯한 순진한 “사회주의자”들이 뉴욕 경제를 살릴 기회를 걷어찼다고 맹공을 퍼붓고 있다. 이 와중에 빌 더블라지오(Bill de Blasio) 뉴욕 시장이 아마존의 결정을 비판하는 칼럼을 뉴욕타임스에 기고했다. 자본주의 시장과 도시경영에서 기업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과 그 부작용에 대해 뉴욕시의 수장으로서의 통찰을 읽을 수 있기에 전문을 번역했다. 원문은 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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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vin Case from Bronx, NY, USA – Bill de Blasio, CC BY 2.0, Link

아마존이 뉴욕시에 25,000개의 신규 일자리를 가져다줄 협약을 백지화하려 한다는 소리를 내가 처음 들은 것은 목요일 그 뉴스가 보도되기 한 시간 전이었다.

그 통화는 짧았고 회사의 변심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었다.

불과 며칠 전에, 나는 아마존의 한 임원과 그들이 어떻게 몇몇의 비판자를 이겨낼 수 있을지에 대해 의논했다. 노동조합을 만나라. 공공임대주택 거주자를 고용해라. 인프라스트럭처와 기타 커뮤니티의 요구에 투자하라. 롱아일랜드의 노동자들에 대한 공정성과 기회 창출에 신경 쓰고 있음을 보여줘라.

분명한 길이 앞에 놓여 있었다. 간단하게 말해서 : 당신이 당신 회사의 의도나 진심을 의심하는, 소규모지만 소란스러운 뉴요커 그룹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라.

그 대신에 아마존은 그들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기 위해 주민들과 커뮤니티의 지도자들을 만난 지 불과 두 시간여 후에 회사는 갑자기 모든 것을 취소해버렸다.

나는 소득 증가와 부의 불평등에 대한 문제를 오랫동안 지켜봐온 진보주의자다. 지난 11월에 아마존과 체결한 협약은 탄탄한 기초였다. 이는 적어도 조직화된 건설 및 서비스 노동자를 포함한 25,000개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고, 공공대학과의 파트너십을 형성하고, 교통이나 적정한 주택에 우선순위를 둘 270억 달러의 신규 세수를 – 시와 주(州)가 본사를 유치하기 위해 양보하기로 한 세금의 아홉 배에 해당하는 – 창출할 수 있었다.

뉴욕으로의 이 소매업 거인의 확장은 미국 주식회사(corporate America)에 대한 점증하는 분노 탓에 적지 않은 반대에 부딪혔다. 수십 년간, 부와 권력은 극상층에 집중되어 왔다.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아마존의 회장 제프 베조스가 가장 확실한 사례다.

이 지점에서의 교훈은 기업은 더 이상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분노를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샌프란시스코나 오클랜드에서 시외에 있는 사무실로 향하는 기술직 노동자를 태운 버스에 돌멩이를 던졌던, 실리콘밸리를 휘저었던 분노를 목격했다. 우리는 지난 달 열린 다보스에서 기업 권력의 점증하는 독점에 대한 저항에서 그것을 목격했다.

저항에 직면하여 공을 들고 집으로 가버린 아마존의 변덕스러운 결정은 그러한 분노를 잠재우진 못할 것이다.

시와 주는 우리의 목표를 잠시 유보했다. 그리고 보다 중요하게, 대부분의 뉴요커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새로운 본사에 대한 지지는 그들이 누려야할 경제적 기회를 너무도 자주 갖지 못한 유색인종 커뮤니티와 노동계급 사이에서 가장 높았다. 수천의 중류층 가족에게 활로를 제공할 수 있는 프로젝트는 시애틀에 있는 이사회에 앉아 있는 소수의 권력자들에 의해 좌초했다.

결국 아마존은 그들의 프로젝트를 꾸며나갈 방법에 대해 커뮤니티에게 굴복하거나 심지어는 진실되게 대화하고자 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들은 비판자와 협상해야 하는 도시에는 여하한의 경우에도 머물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건 일종의 패턴이다. 시애틀의 시의회가 노숙자 문제 해결을 위한 자금조달을 위한 대기업이 세금을 통과시키자 그 회사는 7,000개의 일자리를 위험에 처하게 할 대규모 확장 계획을 중지하겠다고 협박하여 세금을 폐지시켰다.

경제적 권력은 – 이 나라의 모든 대도시 지역에서 5만 개의 일자리와 수십억의 매출을 모가지 날려버릴 수 있는 – 지속적으로 더 적은 수의 손아귀에 놓이고 있다.

한세대에 걸쳐, 일하는 이들의 생산력은 점점 더 높아지고, 더 많은 시간 일하고, 그들의 몫을 정당하게 챙기지 못하고 있다. 최고경영자들의 업무를 통한 혜택은 치솟고 있고, 그 와중에 실제 그에 대한 책임이 있는 이들은 더 적게 가져가고 있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아마존이 여기에 제2본사를 짓지 않겠다는 결정을 발표한 같은 날에, 회사가 지난 해 창출한 수십억의 이익에 대한 연방소득세는 한 푼도 내지 않을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수백만의 노동계급과 중류층 미국인이 올해 부자에게는 엄청난 이득을 안겨주는 트럼프 대통령의 세금 정책이 그들에게는 쥐꼬리만한 세금환급만을 안겨주는 것을 알아차린 와중에 더더욱 분통 터지는 소식이다.

이 나라의 가장 큰 도시의 시장으로서, 진보적 봉화이자 자본주의 핵심적인 상징인 곳의 시장으로서 나는 미국 주식회사에 분노하고 있다. 이 나라의 다른 나의 동료 시장들 역시도 그러하다. 우리는 이 게임이 조작됐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기업이 우리를 각자도생의 경쟁으로 몰아넣기 때문에 우리 주민에 대한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 우리가 또 다른 레이스에 뛰어들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아마존의 제2본사 입찰전은 그러한 부당함의 전형이다. 기업이 도시들을 맞붙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국가적 대안으로 경제적 전쟁을 종식시킬 시점이다.

몇몇 회사는 그렇게 하고 있다. 세일스포스(Salesforce)의 설립이자 최고경영자인 마크 베니오프(Marc Benioff)는 무주택자들을 위한 서비스 자금을 조달하고자 하는 샌프란시스코의 새로운 기업세에 찬성했다. 1월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시애틀의 적정한 주택 공급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5억 달러를 약속했다.

뉴욕에서의 아마존의 앞길은 그들이 우리 주민들의 경제적 불안과 유동성에 대한 공포를 이해했더라면 그리고 그들과 직접 대화했더라면 더 부드럽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권력의 집중이 거대기업의 손아귀에 놓일 때 어떻게 되는 지를 목격했을 뿐이다. 다음 기업이 분열과 정복을 시도하기 전에 규칙을 바꾸자.

셰일가스, 또 하나의 거품인가?

한때 남미 사회주의 블록의 구세주였던 베네수엘라가 오늘날 저런 무정부 상태의 국가가 된 이유가 뭘까? 정치 사회적으로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저유가를 빼놓을 수 없다. 베네수엘라는 다른 산유국의 원유에 비해 높은 비용을 치러야 하는 탓에 저유가 시대에 접어들면서 경제 상황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하여왔다. 그렇다면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저유가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을까? 한동안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라는 표현이 일종의 상식처럼 자리 잡았었는데 말이다.

그 비결은 바로 ‘Fracking Miracle(수압파쇄 기적)’에 있다. 고압의 액체를 이용하여 광석을 파쇄하는 채광 방법인 프래킹이 유전에 적용되면서 주요 산유국들은, 그중에서도 특히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괄목할 만큼 늘어 왔다. 2016년 현재 미국에서의 원유 생산량 중 프래킹 기술에 의한 생산량이 51%를 차지하는 기적이 달성된 것이다. 25년 전 이 기술로 생산되는 원유는 전혀 없었다. 따라서 이 기술이 대규모 지진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일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프래킹 기적은 멈출 생각이 없을 것이다.


미국의 셰일가스 생산 증가 추이(출처)

이 기적은 미국과 주변 정세를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프래킹 기술에 의해 생산되는 셰일가스 덕분에 미국은 경제 호황을 누리며 금융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더불어 ‘눈엣가시’와 같은 반미(反美) 성향 산유국들의 목덜미를 붙잡고 흔들 수 있게 되었다. 한편, 25년 전에는 적용도 하지 않던 프래킹 기술이 어떻게 오늘날 주류로 자리 잡게 됐을까? 무엇보다 기술적인 진보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바로 프래킹 업체들이 비즈니스를 할 수 있도록 돈을 대주는 금융시장의 존재를 들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전통적인 IB 금융으로 자금을 조달했던 프래킹 비즈니스가 사실은 벤처 투자적 성격이 있었는데, 서서히 이제 그 한계가 드러나고 있어서 지속가능성에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레버리지를 일으켜 자금을 조달한 많은 업체가 중기적으로 계속되고 있는 저유가 및 최근의 금리상승 기조와 이에 따른 금융비용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비용 절감을 위해 인력을 자르는 등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또 금융회사는 더 높은 금융비용을 요구하며 추가 대출의 창구가 사라지고 있다.

요컨대, 신기술에 의한 원유 생산 증가 덕분에 미국 경제는 호황을 즐겼고, 나머지 산유국은 경제 불황에 시달려 왔던 것이 에너지 시장의 상황이다. 그런데 그러한 과잉공급을 통한 저유가는 서서히 지속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 곧 그 거품이 꺼질 것이라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심지어 프래킹 업체는 과잉 공급을 방지하기 위해 막대한 양의 천연가스를 태워 없애버리고 있다고 한다. 이는 기후변화에도 영향을 미치는 등 무정부적 시장경제의 폐해를 고스란히 에너지 시장에서 재연하고 있다.

결국 흥미롭게도 이러한 상황은 금융위기를 초래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을 닮아있다. 거칠 것 없는 낙관주의, 높은 기대인플레이션, 금융시장의 과잉 유동성 등, 그리고 가격 하락과 높은 레버리지로 인한 채무자의 지급능력 상실. 다만 전국적 규모의 주택시장과 달리 한정적인 시장이라는 점에서 그 여파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한편으로 다루는 상품이 원유라는 점에서 의외로 시장에 미치는 여파가 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는 결국 또 한 번 반복하는 것일까? 희극이길 바라지만.